책을 읽다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읽는 이유와 동기를 물어봐지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어김없이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 난 한결같이 유시민이라는 작가의 사고방식을 알고 싶어서라는 답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띠었다. 거창한 이유라도 기대했던 모양이다. 사회정치 관련 도서라 그럴 수도 있고 어려운 책을 별 뜻 없이 읽으려는 태도를 좋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존경하는 사람의 생각을 파악하고자 이 책을 선택하여 읽었음에는 변함없고 오히려 책을 통해 교훈이나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않고 책을 읽게 되어 더 감명이 깊었다. 마치 기대 없이 영화를 봤는데 좋은 영화를 본 것과 같이 말이다.
책, 영화의 제목이나 기사의 표제에 글의 주제와 내용이 함축적으로 표현된다고 배웠다. 그런가 보다 했지 평소 여러 작품들의 제목을 보고 직접 느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제목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은 국가라는 것의 정의를 내리는 것과 같이 여겨져 무겁고 형이상학적인 느낌을 준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 무엇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해줄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접하면 제목은 달리 보이게 된다. 작가의 생각을 설교하고 설득하는 것이 아닌 작가가 국가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만을 적었다. 그렇기에 책을 다 읽은 후 제목이 주는 느낌은 마치 작가가 독자에게“국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질의하는 것 같았다. 이 질문은 국가의 사전적 정의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사전적 국가는 사전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다. 국가의 역할과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라 여겨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문뜩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곤 두 편의 시가 떠올랐다. 하나는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인 시’이고 다른 하나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이다.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국가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부끄러움이 직접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글로 저항하여 독립운동의 쉬운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윤동주 시인의 자괴감과 상충되었기 때문에 이 시가 떠오르지 않았나 싶다. 윤동주 시인은 나라를 더 걱정하는데 반해 난 나라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동일하지만 그 뜻이 다르고 이에 대해 자책감을 느꼈다. 그로 인해 국가에 대해 사색을 했고 안도현 시인의 시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작은 연탄마저도 누군가에겐 뜨거움을 주는데 타고 남은 연탄재를 함부로 차고 다닐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내용을 통해 나만의 국가관을 설립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 현 위치에서 나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걸핏하면 국가와는 별개로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쳐 오히려 국가에 대한 관심이 먼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역으로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개발하는 것이 곧 국가를 뜨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연탄은 뜨겁게 해줄 목적으로 타지 않는다. 자신이 타고 있을 때 주위가 뜨거워지는 현상일 뿐이다. 연탄이 타는 것은 비록 자기 혼자만의 싸움이지만 주위를 따뜻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연탄과 같이 자신을 위해 노력하며 싸워나간다. 혼자만의 싸움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주위를 뜨겁게 한다. 작게는 주변을 넓게는 국가까지도 말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곧 국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런 개개인을 함부로 차거나 차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인 것이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통해 국가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다른 이들도 이 책을 통해서든 다른 자료를 접하든 아니면 사색을 하든 어떤 식으로든 국가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지녔으면 좋겠다.